고 1 시절 부터 이어온 친구들과
고 1 시절 부터 이어온 친구들과

 

지난 명절 즈음, 순천고 37회 1학년 반 모임이 결성된 지, 35년 만에 필자의 시골 집에서 굴구이 파티를 열었다. 파릇파릇한 떡거머리 고교생의 모습은 사라지고 중년의 아저씨들의 모습이지만 그때의 추억이 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아 왔다.

1985년 추운 겨울날 방학기간, 10여명의 고교 1학년생들이 집전화를 통해 버스 정류장에 모여 집에서 준비한 냄비, 버너, 라면, 삼겹살, 김치, 쌀 등을 지고 순천시 소재, 승주 조계산 자락으로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그때는 등산화도 등산복도 아이젠도 스틱도 없이 운동화에 교련복, 체육복 등 촌스런 복장으로 외투로 추위를 막고 오른 시절이다. 눈이 덜 녹아 엉덩방아를 수십번 찧고 정상에나 갔는지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삼겹살에 흰 밥을 먹고 라면도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 학년이 올라가도 그 모임은 유지되어 소풍때도 같이 사진을 찍었고 졸업 후에도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군대 가거나 휴가 나오면 어김없이 댓은 모여 같이 성장했던 것이다.

결혼도 하고 나이도 먹어갔고, 기쁜일, 슬픈일도 같이 이겨나갔던 모임이다. 회비를 모은 적도 없었으나, 부모님 상 당하면 어김없이 모여 장지에도 따라가는 촌놈의 우정은 남아있는 친구들이다.

이제 50이 넘자, 여유가 생긴 친구들이 늘고, 모임을 정식으로 발족해 회칙과 회비도 적립해 보자는 제의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 올 해, 처음으로 통장이란 것을 마련했다. 경기도 약사인 친구가 경기지역 마약퇴치운동본부 본부장이란 멋진 이름의 취임식에도 백년지기 이름이 걸린 화환도 보냈다.

이번 여행도 회장은 맡은 서울 모 금고 방카슈랑스 부문 이사가 추진해 남한강 자락에 멋진 팬션으로 모이자는 통보를 받았다. 서울에 살 때, 직장 선배들과 같이 임신한 아내와 놀러갔던 추억이 있지만 벌써 20년이 지난 지역이다. 순천의 김치를 포장해 가자는 재무(부동산업자)의 아이디어를 받아, 별량 개랭이 마을 순천꼬들빼기 영농조합법인에 들러 서울 친구 몫과 우리 양식으로 15만원 어치 6박스를 챙기고 어머니 묵은지도 챙겨 1박 2일 일정으로 남한강 나들이를 떠났다.

법무사 친구의 차량에 몸을 싣고 광주에 사는 재무를 만나 5시간 넘게 도로를 달렸다.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도 사서 나눠먹고, 양갱이랑 주전부리도 먹었다. 삶에 쫓겨 여행을 7년여 동안 못가본 터라, 휴게소 모습도 정겨웠다. 물론, 칩거수준은 아니었으나, 또래 친구들과 정담을 나누며 들른 휴게소는 재미졌다.

 

남한강 변에서
남한강 변에서

 

돌아돌아 도착한, 양평 국수리 팬션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곳곳에 별장풍 건물들이 자리잡아 있었고 아직도 개발중인 흔적이 있었다. 드디어, 낯익은 친구들이 서너명 보이는 팬션이다. 우리를 기다리느라, 배 고픈 얼굴이다. 반가운 인사만 하고 고기도 꿉고, 고향 막걸리도 몇 순배 돌리고, 사진도 찍었다.

바쁜 일정인 모 구청 부구청장인 1학년 때, 반장 녀석과 오랜 만에 얼굴 보인 서모 친구는 곧 돌아갔다. 아쉬운 마음이지만, 어쩌랴? 담을 기약하며, 남은 친구들끼리 재미지게 지냈다. 멀리 보내는 골프 시합을 하자는 두 친구가 있어 심판도 보고, 고속모터 보트도 큰 돈 내서 한바퀴씩 돌고 그러다 보니 벌써 저녁이다.

 

즐거운 한 때
즐거운 한 때

 

밤이라 강가에 오래있기 그래서, 40년된 팬션 건물에 들어가 요리도 해 먹고 노래도 한 자락씩 불러 제치고 하던 차에 나이 탓인지 초저녁에도 술에 취해 두 셋은 자고 체력좋은 친구들이 부르는 노래에 지쳐 나도 슬그머니 2층 쇼파로 몸을 뉘었다.

눈떠보니 코고는 친구의 잠버릇 소리가 들리고 벌써 4시다. 노트북과 사진기를 연결해 어제 사진을 카톡에 올리고 보니 아침이다. 걸걸한 건설회사 이사 친구가 같이 깨어 움직이고 주섬주섬 일어난 친구들은 장건강을 확인하고 정신들을 차린다. 쌀을 씻고, 밥을 앉히고 못하는 요리지만 김치찌개도 준비하고 오이무침도 쏘세지 뽁음인지 그냥 뎁힌 것인지 모르는 요리도 척척해 냈다.

아침이 9시가 넘어 다들 모여 남한강을 바라보며 조식을 즐겼다. 다들 잘 먹고 살지만, 어린시절 없던 시절의 소풍놀이처럼 한 떼로 모여 매운 김치찌개로 해장을 하고 믹스 커피로 여유도 부려봤다. 전문 캠퍼인 친구 부부가 쳐 놓은 텐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아름다운 노래가락까지... 호사를 부렸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 청소를 대강하고 주인장이신 70대 중반의 어른이 해주시는 재테크 강의도 들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런 곳을 소유할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회장님이 나눠준 남은 식재료를 챙기고 또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출발한다. 아쉬워 사진들을 공유하며 12월에 한번 더 추진하자는 본부장님의 제안에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하며
다시 만날 때를 기약하며

 

이젠 소중한 친구들이 귀하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다. 다들 건강히 다음 시간에 모여 웃고 떠들고 서로 힘을 주는 시간이 곧 오길 바라본다.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이 대견스럽고 든든하다. 나 역시 앞으로 최선을 다해 인생의 항해를 해야 겠다. 더욱 원숙된 모습으로 그들 곁에서 사진을 찍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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